술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흔히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고 말한다. 물론 현대 의학에서는 금주나 절주를 권하지만, 옛사람들이 말한 술은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술이었다. 술은 혼자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문화로, 마음을 여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술에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어느 시인의 시 주찬酒讚은 술의 철학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냈다. 시인은 먼저 술을 뜻하는 한자 ‘주酒’를 이렇게 파자破字한다. 술은 물(水)이 아니라 삼수변(氵)에 유(酉)가 더해진 글자다. 유(酉)는 본래 술을 빚는 술독을 상징하는 글자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 익살을 더하여 "닭이 물을 먹듯 조금씩 천천히 마셔야 한다."고 말하였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술은 마시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술을 대하는 태도다. 술을 음미하는 사람은 술을 즐기지만, 술을 삼키기만 하는 사람은 결국 술에 먹히고 만다는 사실을 시인은 유쾌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흥미로운 상상력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말술은 집안을 망친다.”며 술을 경계하지만, 시인은 정반대로 말한다.‘한 잔 술은 근심을 잊게 하고, 두 잔 술은 도道를 깨우치게 하며, 세 잔 술은 신선神仙이 되고, 네 잔 술은 학鶴이 되어 하늘을 난다’고 했다. 다섯 잔 술에 이르면 염라대왕閻羅大王 조차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술을 많이 마시라는 말이 아니다. 술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심리 변화를 과장된 비유와 해학으로 표현한 문학적 장치다. 술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하고,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감성과 용기를 밖으로 끌어내기도 한다는 뜻이다.
시인의 시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술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부모님께 올리는 술은 효도주孝道酒가 되고, 자식에게 주는 술은 훈육주訓育酒가 되었다.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술은 경애주敬愛酒, 은혜를 갚는 술은 보은주報恩酒, 친구와 마시는 술은 우정주友情酒), 원수와 마시는 술은 화해주和解酒, 동료와 잔을 높이 드는 술은 건배주乾杯酒, 고인을 기리는 술은 애도주哀悼酒,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은 합환주合歡酒가 되었다.
술은 하나지만 이름은 달랐다. 달라진 것은 술이 아니라 술잔을 들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결국, 술의 가치는 도수가 아니라 관계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 가운데 가장 서민적인 술은 단연 막걸리다. 막걸리는 임금의 술이 아니라 농부의 술이다. 새벽부터 논밭을 일군 농부가 하루의 피로를 풀며 마셨던 술이고, 이웃끼리 품앗이를 마친 뒤 둘러앉아 웃음을 나누는 술이다. 잔칫날에는 기쁨을 나누었고, 장례식에서는 슬픔을 함께 견디게 한다. 막걸리는 술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온기였다. 값이 비싸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사람 냄새만큼은 그 어떤 술보다 진하다.
노老 시인의 시‘막걸리 한 됫박’역시 바로 그 점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막걸리 한 됫박이 이 세상에 없다면 세상은 참 추울 것이다."고 말한다. 이 말은 술이 없으면 세상이 삭막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풀어 주는 여유와 위로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포장마차에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사람도, 별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가슴속 응어리를 술잔에 녹여 내는 사람도 결국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안타까움이다. 시인이 말한 막걸리 한 됫박은 쌀로 빚은 술이 아니라, 서민의 눈물과 웃음, 희망과 그리움을 함께 담아낸 삶의 그릇이다.
생각해 보면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삶을 가장 닮은 술이다. 맑은 술처럼 자신을 뽐내지 않고, 와인처럼 격식을 따지지도 않는다. 투박한 사발에 따라 나누어 마시면 남남이 금세 친구가 되고, 서로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웃고 운다. 막걸리 한 사발은 배를 채우는 술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술이다. 한 모금에는 고단한 하루가 녹아 있고, 또 한 모금에는 내일을 살아갈 용기가 담겨 있다. 술을 예찬한다는 것은 술 자체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술잔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예찬하는 일이다. 시 ‘주찬酒讚’과‘막걸리 한 됫박’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다.